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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berDuck

데이터는 완벽하다. 하지만 인간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RubberDuck


이번 포스팅에서는 빅데이터 붐으로 수치와 모형만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도록 변모하는 시대에서, 본능적인 인간 행동을 해석하는 것이 소홀해지고,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문학적 통찰을 활용하는 ‘센스 메이킹’ 에 대한 후기를 기록하려 한다.


대학원 시절, 매주마다 초청된 연사의 강연을 듣을 수 있는 1학점짜리 세미나 수업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연구 주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상이 변화하는 상황이나 각계 리더들의 생각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수업이었다.


그 중 하루는 한국 오라클 장성우 전무가 ‘미래의 클라우드 전략’을 주제로 강연했었다. 발표 내용이 좋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내용은,

  1. 앞으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호스트 컴퓨팅은 물리적인 저장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 인공위성과 같은 형태로 통해 센터를 확장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
  2. 데이터 전문가로서 시장에서 차별화가 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 Landscape 을 이해하고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성하기 위한 각 컴포넌트, 인프라 별로 적합한 프레임워크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3. 데이터 중심 사회로의 변화가 급격해지는 가운데, 심도있는 데이터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피상적 정보만을 활용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오류가 오히려 많아질 수 있다.


이 중 세번째 주제는 강연의 마지막에 언급이 되었는데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장성우 전무는 읽어보면 좋은 책으로 ‘센스 메이킹’을 추천했다.


읽어야할 책 리스트에 기록해 두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다가 대학원 졸업을 하고 리프레시 차원에서 떠나는 미국 여행길에서 비로소 읽게되었다. 14시간에 이르는 긴 비행이었지만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빠져서 다 읽다보니, 도착한 날 고생을 좀 했다.


먼저 저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하이데거 철학으로 삼성전자, 아디다스, 레고 등을 컨설팅한 사례로 유명한 레드 어소시에이츠 (Red Associates) 의 창립자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Christian Madsbjerg) 가 자신의 케이스 스터디를 엮어서 집대성한 ‘센스 메이킹’ 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센스메이킹의 다섯가지 전략


  1. 개인이 아니라 문화를 살핀다
  2. 피상적 데이터가 아니라 심층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3. 동물원이 아니라 초원으로 나간다
  4. 제조가 아니라 창조한다
  5. GPS가 아니라 북극성을 따라간다


나 또한 데이터 컨설팅을 밀접한 업으로 삼고있는 1인으로서, 이 책에서 강조하는 ‘느낌, 사실, 경험, 관찰을 종합해 패턴을 발견하고 현실과 연결하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센스메이킹의 5가지 원칙들의 구체적인 부분이 와닿지 않아서 여느 자기개발서와 같이 진부한 스토리로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입부만 확인하고 읽기를 망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챕터를 하나씩 넘기면서 후반부로 갈때 쯤에 이 모든 원칙이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핵심적인 개념이 점점 구체화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들에 대한 안개가 걷혀가는 느낌들어, 장시간 비행에 피로할 내 몸 상태도 잊은 채 마지막 장까지 집중하게 만들었다.


각 원칙 중 몇가지 와닿았던 구절을 인용해보면,

우리가 어떤 방을 개별적인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문화적 현실을 형성하는 구조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인 데이터 중심 알고리즘 사고에서 
한병의 향수는 몇 밀리그램의 액체가 담겨 있는지로 정의된다.
또한 펜은 금속이 붙어있는 플라스틱 막대다.

반면 모든 대상을 다른 대상과 연계해 지각하면, 
향수는 립스틱, 하이힐, 문자메세지와 함께 
데이트의 세계에 속한 도구가 되며
또한 펜은 워드프로세스, 종이, 책과 더불어 저술의 세계에 속하게 된다.
우리 생활 속의 모든 대상은 다른 모든 대상과 관련된다.
어떤 대상도 독자적인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 개인이 아니라 문화를 살핀다, 43p.


우리가 어떤 시장에 대한 데이터를 처음 접하고, 그에 대한 유의미한 통찰을 얻어내기 위해선 그 시장이 속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그게 참 과정에 녹여내기까지는 생각처럼 쉽지않다.

가령 어떤 문화는 모임에서 점심은 2시간짜리 만찬이고, 다른 문화에서는 10분 동안 간단히 먹는 샌드위치일 수 있다. 이런 무언의 규칙들은 사실 특정 문화에 대한 귀띔이라도 해주는 존재가 없으면 인지하기 어렵다. 수치적인 데이터만 씨름하게되면 시장에 전혀 맞지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절'은 실리콘 밸리의 주된 화두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언제나 전통적 방식을 뒤집는다.
즉, 단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단절' 시킨다.
실리콘 밸리식 표현에 따르면, 한 산업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이전' 그리고 '이후'를 분명하게 나눈다는 뜻이다.

단절은 이전에 존재한 것을 거부한다.
실리콘 밸리는 축적된 지식과 과격하게 결별하기를 원한다.
이런 '단절'은 혁신을 일으키려면 과거와 결별하고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과감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믿음을 반영한다.

이런 태도로 인해 실리콘 밸리의 청년들에게 발현되는
한가지 양상은 지식과 경험을 대체하는 정량화에 대한 집착이다.
현재 이런 추세는 빅데이터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 과거와의 단절만이 혁신은 아니다, 68p.


흔히들 빅데이터는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가 중요시 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이다. 그래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지만,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처럼 빅데이터 방법론이 과거 인과성에 기반한 추론 연구 방법과 병행되지 않고 그 대용으로 대체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구글 트랜즈(Google Trends) 독감 발생 사례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구글 트랜즈는 질병통제예방센터 보다 2주 빠르게 독감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나우 캐스팅 (nowcasting)’ 이라는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2009년 전염병 예측을 완전히 놓치고, 2012, 2013년 독감 발생 정도를 과대 예측했다. 그 원인은 ‘고등학교 야구’, ‘닭고기 스프’ 같이 실제 독감 발생과 무관한 검색어에도 높은 상관 관계가 설정되어 실질적인 인과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로 판명이 났다.

달리기의 경험이든, 종이에 볼펜을 대는 의식이든, 
칼에 찔리는 상상을 하는 고통스런 훈련이든, 창의적인 사고자라면
모두 열린 태도를 유지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을 개발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일은 엄청나게 어렵다.
우리의 뇌는 패턴을 엮고, 혼돈에서 질서를 창출하고,
확실성에 대한 감각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무지'의 상태에서 오래 생산적으로 머물수록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즉 더 많이 읽고, 경험하고 숙고할수록 창의적 돌파구를 열 기회가 왔을 때
활용할 재료가 늘어난다. 이 돌파구는 '번개처럼' 열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패턴 인식에 대한 풍부하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세상이 드러내는 것 또는 보여주는 것에 가장 열려있는 사람이다.

/ 그들은 어떻게 창의적 사고에 이르렀을까, 228p.


나도 가끔씩 맞닥뜨린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생각이 복잡해지는 상황이 오면 일단 생각을 잠시 끊고 바깥으로 나가 공원을 질주한다던지, 백색소음에 노출된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반나절 이상 보내곤 한다. 그러다 보면 예기치도 않은 시점에 번뜩 이 상황을 타개할 실마리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한다.

우스겟 소리로 아인슈타인은 ‘왜 항상 면도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라고 했을 정도로 이 현상이 한편으론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여기서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통찰이라 설명하는 ‘귀추’ 이론에 따르면, 이 현상 또한 다양한 경험과 영역의 범주를 두지 않는 학습을 통해 강화 시킬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보편화된 IT 시스템과 로봇공학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술 때문에 밀려난 모든 일에 담겨 있는 지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술을 우리보다 앞세울 때 우리는 총체적 사고에서 오는 지속 가능한 효율성을 놓치고 만다.

주위를 둘러보라, 
매일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이뤄지는 작고도 중요한 행위에는 방대한 지식이 담겨있다.

주문을 깬 후에는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라.
당신이 사는 거리, 집, 학교에서 매일 일어나는 특별한 일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런 일 또한 허블 우주망원경이나 구글이 설계한 바둑 알고리즘 만큼이나
경이롭고 가치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알고리즘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결코 관심을 기울일 줄 모른다.
사람은 관심을 위해 존재한다.

/ 사람, 의미를 만들고 해석하다, 297p.


정말 필요한 순간에 읽음으로서 상당부분 고민하고 있던 많은 생각이 정리되었고, 앞으로 다시 나갈 수 있는 연료를 재충전한 느낌을 오랜만에 안겨준 책이다.

좋은 책을 추천해준 장성우 전무께 감사드리며,

특히 데이터 분석에 입문한 공대생이나 앞으로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에 빠진 직장인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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